믿음(이만)의 필수요소는 6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 :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시다는 것과, 주님으로서의 하나님(루부비야)과 경배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울루히야)과 그분의 이름과 속성에 대해 굳게 믿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네가지 사항에 관하여 차례대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 :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본성 :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본성이며 이러한 믿음을 끄집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종교가 다르고 사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이 존재함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순간이나 재앙이 닥쳤을 때 우리가 그분께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아에 심어주신, 믿는 자로서의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이러한 본성을 지우고 잊어버리려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자의 기도가 들어지고 요청하는 자가 원하는 것을 받으며 압박받는 자의 기도가 들어지는 경우를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존재하고 계시다는 확실한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증거는 수없이 많겠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 모든 이들의 상식은, 발생한 일은 그 발생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우리가 보는 주변의 피조물들 역시 같은 이유로 그것을 창조한 창조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자는 바로 위대하신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그것을 창조한 창조자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을 스스로 창조할 수 없는 것처럼 이 피조물들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창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아니면 무(無)가 그들을 창조했던가 아니면 그들이 창조자란 말인가?”(꾸란 제 52장 35절) 이 꾸란 구절의 뜻은 : 그들은 창조자 없이 창조되지 않았으며 그들은 자기 자신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창조한 창조자의 존재는 필수이며, 그 존재는 바로 축복가득하고 지고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 그리고 하늘과 땅, 별과 나무 등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우주의 시스템은 그것을 창조한 하나의 창조자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자는 바로 지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완벽히 하신 하나님의 일이라.” (꾸란 제 27장 88절) 예를 들어 우리가 보는 별들과 행성들은 결코 변경되지 않는 확고한 시스템을 따라 움직이며 모든 별들에게는 궤도가 있어 그 별은 절대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태양이 달을 따라잡는 것은 합당하지 않으며 밤이 낮을 추월하는 것도 합당하지 않노라. 그리고 모두는 궤도를 따라 유영하노라.”(꾸란 제 36장 40절)
  1. 주님으로서의 하나님(루부비야)을 믿는 것

하나님의 루부비야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즉,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주님(랍브)이시며 모든 것의 소유주이자 창조주이며 양식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라는 굳은 믿음과 신념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살리시고 숨을 거두어가시며 유용함과 해악 등 모든 것은 그분의 일이며, 그분의 손에 선(善)이 있으며,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그분과 대등한 존재는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신념은, 하나님의 행위는 그 무엇과도 비길 데 없는 유일무이한 속성을 지님을 믿는 것이며 이는 다음과 같은 신조를 포함합니다 :

하나님 한분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며 그분 이외의 창조자는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시라.” (꾸란 제39장 62절) 사람의 창작물과 관련해서는, 그것은 단지 기존에 존재하는 사물의 속성 변경, 조합 혹은 조립일 뿐이며 그것을 진정한 창조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도 아니며 죽음 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에 양식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며 그분 이외에는 양식의 제공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대지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양식이 있노라.”(꾸란 제 11장 6절)

그리고 그분께서는 모든 것의 소유주이시며 그분 이외에는 진정한 소유주가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찬미받으실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노라.” (꾸란 제 5장 120절)

그리고 그분께서는 모든 일을 결정짓는 분이시며 최종 결정자는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에서부터 대지로 일을 결정지으시며”(꾸란 제 32장 5절) 삶과 처해진 환경에 관한 인간의 의사결정과 조율은 인간의 제한된 능력과 한계 내에서 수행되기에 제한적이고 결점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의사결정으로 이익을 거둘 수도 있지만 손실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고하시고 찬미받으실 창조주의 결정이란 그 어떤 것도 빠져나갈 수 없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그분의 결정은 반드시 실행되며 그 무엇도 그분의 결정을 바꾸거나 그분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창조와 일의 결정은 그분의 소유가 아니던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축복이 가득하도다.”(꾸란 제 7장 54절)

하나님의 사도 시절의 우상 숭배자들조차도 주님으로서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 시절의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소유주이시며 일의 최종 결정자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믿음이 그들의 이슬람 입교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그들에게 하늘들과 땅을 창조한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진실로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꾸란 제 31장 25절)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라는 사실, 즉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소유하고 계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총으로써 우리에게 양식을 제공하신다는 것을 믿는 자는 자연스레 하나님 한분께만 자신의 경배 행위를 바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일의 최종 결정자이시며 살리시고 숨을 거두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자가 자신의 경배행위를 다른 존재로 돌린다면 이것은 가장 비판받을 부당행위이며 가장 커다란 죄악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현자 ‘루끄만’은 그의 아들에게 조언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 내 아들아!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지 말라.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는 실로 엄청난 부당행위라”(꾸란 제 31장 13절)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커다란 죄가 무엇인지 질문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가 가장 커다란 죄라.” ( ‘알-부카리’(no.420)와 ‘무슬림’(no.86)이 수집한 하디쓰)

루부비야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줍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하나님 그분께서 우리를 소유하고 계시며 그분께서 원하는 대로 그분의 지혜에 걸맞게 일을 조율하시며, 그분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시며, 그분 이외의 모든 것은 창조된 피조물이고 창조주 앞에서 가난할 뿐이며 그분의 도움을 필요로 함을 확신할 때, 그리고 모든 일은 그분의 손에 달려있으며 그분 이외에는 창조자가 없으며 그분 이외에 양식을 제공하는 자가 없으며 오직 그분 한분만이 일을 결정하시는 분이며, 그 어떤 작은 생명체도 그분의 허락이 있을 때만 움직이며, 그분의 결정이 있을 때만 멈춘다는 것을 확신할 때,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 한분에게로만 향할 것이며 그분께만 구하고 요청하며 삶의 전반에 있어 그분께만 의탁하며 우리 앞에 전개되는 삶을 열심히 그리고 용감히, 평안함과 결의와 확고부동함으로써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삶에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내바쳤기에 우리는 다른 이의 손에 있는 것을 보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모든 일의 향배는, 원하시는 대로 선택하시고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1. 경배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울루히야)을 믿는 것

하나님의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

드러나는 혹은 드러나지 않는 모든 종류의 경배 행위를 받으실 권리는 오직 하나님 한분께만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기도, 두려움, 의탁, 요청, 예배, 의무희사금(자카), 단식 등의 경배 행위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이외에는 진정으로 경배 받을 존재가 없으며 부처도, 예수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들이 경배해야 할 존재는 오직 한분이라. 가장 자비로우시고 가장 자애로우신 그분 이외에는 경배 받을 존재가 없노라.”(꾸란 제 2장 163절)

하나님께서는 이 꾸란 구절을 통해, 경배 받을 존재는 하나님 한분이시며 그분 이외의 존재를 경배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

하나님의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측면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

  1. 그것은 ‘진’과 인간이 창조된 이유입니다. 그들 모두는, 대등한 존재가 없는 하나님만을 경배하기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과 인간을 창조한 것은 오직 그들이 나를 경배토록 하기 위함이라”(꾸란 제 51장 56절)
  2.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은 사도들(그들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 보내지고 성서가 계시된 이유입니다. 우리는 사도와 성서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 한분만이 경배 받을 권리를 가지시며 하나님 이외의 경배받는 존재를 불신해야 함을 잘 알게 됩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실로 나는 모든 공동체에 사도를 보내었도다. (사도가 말하길) ‘그대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우상을 멀리하라’”(꾸란 제 16장 36절)
  3.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게 가장 먼저 의무화된 사항입니다. 선지자(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는 사람들을 이슬람으로 초대하기 위해 ‘무아드 븐 자발’을 예맨으로 보냈고, 이 때 그에게 건낸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대는 성서의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 그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이외에는 경배 받을 존재가 없다’는 증언으로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라’ (‘알-부카리’(no.1389)와 ‘무슬림’(no.19)이 수집한 하디쓰) 즉, 모든 경배 행위는 오직 하나님 한분께만 바쳐야 한다고 그들에게 알리라는 것입니다.
  4.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은 ‘라 일라하 일랄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일라’는 경배의 대상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진정으로 경배 받을 존재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 이외의 그 어떤 존재도 우리의 경배행위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5.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이 창조주이고 소유주이며 일의 최종 결정자라는 믿음에 대한 논리적 귀결입니다.

경배 행위란 무엇인가?

경배 행위란 :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행위의 총칭으로, 그분께서 인간에게 명령하시거나 권장하신 말과 행동 등이 포함됩니다. 경배 행위는 예배나 의무희사금(자카)이나 성지순례(핫즈)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도 있고,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에 대한 의탁과 도움 요청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행위도 있습니다.

 

경배 행위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천됩니다 :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의도가 동반된다면 믿는 자의 모든 행동이 경배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슬람에서는, 널리 알려진 의식 예를 들어 예배나 단식만이 경배 행위로 한정되지는 않으며 좋은 의도와 선한 목적으로 행한 모든 유용한 행위가 경배 행위로 승화되며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보상을 얻게 됩니다. 예를 들어 먹거나 마시거나 잘 때조차도,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하여 더 많은 경배 행위를 하기 위한 의도를 가졌다면 우리는 그 행위로 보상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무슬림의 삶의 전부가 온전히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 잘 복종하기 위해 몸을 건강히 할 의도로 음식을 먹었다면 그것은 경배행위이며, 이성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의도로 결혼을 하였다면 결혼은 경배행위가 되며, 자영업이나 직장생활, 그로 인한 소득 역시 좋은 의도를 통해 경배행위로 승화됩니다. 지식을 쌓고 학위를 취득하고 레포트를 작성하고 연구하고 발명하는 것도 경배행위이며 아내가 남편과 자식을 배려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도 경배행위입니다. 이렇듯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실천되는 그 어떤 행위도, 건전한 의도와 좋은 목적이 동반되었을 때 경배행위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경배 행위는 우리가 창조된 이유입니다 :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과 인간을 창조한 것은 오직 그들이 나를 경배토록 하기 위함이라. 내가 그들로부터 양식을 원하는 것도 아니며 그들이 나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길 원하는 것도 아니라. 실로 하나님 그분이야말로 양식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며 힘을 가지신 가장 강력하신 분이라 ” (꾸란 제 51장 56~58절)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과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분을 경배토록 하기 위함이라고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지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배 행위가 필요치 않으신 분이시며 다만 우리가 그분에 대한 경배 행위가 필요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요청을 구하는 가난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인간이 이러한 창조 목적을 저버리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우리 존재 이유에 대해 숙고하지 않은 채 현세의 향락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다른 피조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추락하고 맙니다. 동물 역시 먹고 마시고 목적 없이 살아가니까요. 그러나 동물은 내세에서 심판받지 않을지언정 우리는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은 향락을 추구하며 그들이 먹되 마치 가축이 먹는 것과 같으니 불(지옥)이 그들을 위한 거처라. ”(꾸란 제 47장 12절) 이처럼 꾸란은 불신자들의 행동과 목적을 동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단지 둘의 차이점이라면 불신자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어 이해하고 사고할 줄 알기에 자신의 행위에 댓가를 치러야 하며 동물은 반대로 이성이 없기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배 행위의 기둥 :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경배 행위는 두 가지 기둥(필수 요소)가 떠받치고 있습니다 :

첫째 기둥 :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겸허함과 두려움

둘째 기둥 :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사랑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경배 행위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겸허함과 그분께 대한 복종과 두려움이 전제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분에 대한 사랑과 그분에게로의 희망과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두려움과 겸허함이 없는 사랑은 마치 음식이나 재산에 대한 사랑과 같기에 경배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는 두려움은 맹수나 폭군에 대한 두려움과 같기에 역시 경배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에 두려움과 사랑이 공존할 때만이 진정한 경배 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배 행위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경배 행위의 선결 조건 :

경배 행위가 성립되고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다음 두 가지 선결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

이 경배 행위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위한 것이라는 진실성

이 경배 행위가 선지자의 순나(그의 행위와 말씀)에 부합하고 일치할 것

이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노라.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얼굴을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그의 주님으로부터의 보상이 있을 것이며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은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라.”(꾸란 제 2장 112절)

‘자신의 얼굴을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것은 :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고 진실되게 경배 행위에 임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의미는 : 하나님의 법률과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가 가져온 것을 따르는 자를 의미합니다.

순나(선지자의 행위와 말씀)와의 부합성은 단지 ‘순수한’ 경배 행위 - 예를 들어 예배, 단식, 디크르(하나님 기억하기)- 의 선결 조건일 뿐입니다. 만약 특정 경배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의 보상을 얻고자 하는 좋은 의도로써, 자연스러운 일상 행위를 통해 실천되는 것이라면 – 예를 들어 경배 행위에 필요한 힘을 기르기 위한 의도로써 하는 운동이나, 배우자와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임하는 경제 활동- 순나와의 부합성은 더 이상 선결 조건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행위가 금지사항(하람) 이 아닌 것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쉬르크’

  • ‘쉬르크’(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는 경배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울루히야)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울루히야에 대한 믿음과 오직 하나님 한분께만 바치는 경배 행위가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의무 사항이라면 쉬르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커다란 거역행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쉬르크는 참회가 없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하는 유일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를 용서치 않으시노라. 그러나 그 이외의 죄에 대해서는 그분께서 원하는 자에게 용서를 베푸시노라.”(꾸란 제 4장 48절)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에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죄가 가장 커다란 죄인지 질문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과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가 가장 커다란 죄라.” ( ‘알-부카리’(no.420)와 ‘무슬림’(no.86)이 수집한 하디쓰)
  • 쉬르크는 경배 행위를 썩게 만들며 결국 그 경배 행위는 무효가 되어버립니다. 찬미받으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둔다면 실로 그들이 실천하던 행위는 그들에게 쓸모없게 되어버릴 것이라.”(꾸란 제 6장 88절) 그리고 쉬르크를 저지른 자는 불지옥에 영원히 거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국을 금하셨으며 그의 거주지는 불(지옥)이 될 것이라. ”(꾸란 제 5장 72절)

쉬르크는 작은 쉬크르(쉬르크 아쓰가르)와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 이렇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1.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 :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경배 행위를 바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말이나 행동을 그분께만 바친다면 그것은 타우히드(하나님 한분만을 경배하는 것)가 되고 믿음(이만)이 되는 것이며, 그것을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바친다면 그것은 쉬르크가 되고 불신이 되는 것입니다.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의 예는 :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거나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의탁하며 기대는 것,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들의 주님께서 말씀하셨도다. ‘나에게 기도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들에게 응답해줄 것이라’” (꾸란 제 40장 60절)

지고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믿는 자들이라면 하나님께 의탁하라.”(꾸란 제 5장 23절) 또한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대들은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고 경배하라”(꾸란 제 53장 62절)

따라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바친다면 그는 우상숭배자이자 불신자인 것입니다.

  1. 작은 쉬르크(쉬르크 아쓰가르) :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를 저지르는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말과 행동을 뜻합니다.

예시 : ‘리야’(남에게 보이기 위한 경배 행위). 예를 들어 남이 보고 있기에 더 오랫동안 예배를 드리는 행위,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아름답게 꾸란을 낭송하거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디크르)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 등은 모두 리야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사도(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쉬르크 아쓰가르’이라.” 사람들이 묻길 “오, 하나님의 사도시여. ‘쉬르크 아쓰가르’가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하시길 “그것은 ‘리야’이라.” (‘아흐마드’가 수집한 하디쓰, no.23630)

이와는 달리, 경배 행위의 목적이 오직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며,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예배를 드리지도 않고 단식도 하지도 않는다면 이러한 행위는 ‘무나피끄’(위선자)의 행위입니다. 이는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에 해당하며 그는 더 이상 무슬림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는 쉬르크인가?

이슬람은 미신과 거짓으로부터 인간 이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대한 복종을 철폐하기 위해 도래한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나 돌이나 조각상 등에 대한 기도나 복종은 미신이자 쉬크르(하나님께 대등한 존재를 두는 행위)로서, 허락되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도와줄 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물에 빠져 익사 직전에 있을 때 도와달라고 요청하거나,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행위는 허락됩니다.

도움 요청의 대상이 죽은 자나 움직이지 못하는 고체 덩어리인가요?
이는 쉬르크로서 이슬람과 믿음(이만)에 배치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나 고체 덩어리는 요청을 들을 수도 없고, 듣는다고 해도 대답해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경배 행위이며 따라서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기도하는 것은 쉬르크입니다. 이슬람이 시작될 당시의 아랍 사람들이 저지르던 쉬르크는 돌이나 죽은 자에 대해 기도하고 요청하던 행위였습니다.
아니오
: 말과 요청을 들을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당신의 요청에 응답해줄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요? 즉, 당신이 도와달라고 요청한 사항에 대해 그가 도와줄 능력이 있나요?
이러한 요청은 괜찮은 것이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사람들과의 교류의 한 부분이며 일상적인 인간관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니오
인간의 능력 밖의 일에 대해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 예를 들어 불임의 여성이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쉬르크(쉬르크 아크바르)이며 이슬람에 배치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 대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